오랜 비행입니다.
한국에서 오후 8시에 출발해 홍콩에 밤 10시반에 도착하고 현지시각 밤 11시반에 출발해서 파리에 오전 6시 반에 도착합니다. 우리 시각으로 하면 오후 8시부터 오후 1시까지 비행입니다. 장장 17시간 비행인 셈이지요.
깜박 잠도 잤지만 지금 한국시각 오전11시라 그런지 잠이 오지 않습니다. 좀 달리 살아보려고 맥주도 안 마셨더니, 머리는 안 아퍼 좋은데 잠은 안 오는 군요. 그래도 누워있자고 3~4시간 누워있다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다행이 옆에 자리가 공석이라 좀 편합니다.
이 시간이 또 언제 있을까 하는 조금은 조급한 맘이지요.
조바심…
현재에 충실하고, 매 순간을 진정으로 살아가고, 매 시간을 귀히 여기면서, 조바심도 성마름도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바쁜 마음에 이것 저것 생각하고, 급한 마음에 이 꾀, 저 꾀 짜내는 것과 느긋하게 본질과 핵심에 집중하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시간을 귀히 여기고, 현재를 잘 사는 것일까요?
지리산을 종주한다고 하면,
1박 2일에 야간 산행까지 하며 지리산을 종주한 사람과
4박 5일 쉬엄 쉬엄 쉬고 싶은 곳에서 쉬고, 보고 싶은 곳에서 보고, 기분 나면 막걸리도 한잔하고, 졸리면 한잠 자고 간 사람은 누가 더 훌륭한가요? 앞 사람이 뒤 사람보다 3~4배 효율적으로 산행을 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럼 뒷 사람은 더 효과적인가요?
효율과 효과는 인생에 본질이 아닙니다.
우리 가족은 어디 서 있습니까?
일사불란하게 천황봉 등정을 위한 지름길 위에서 다른 가족과의 경쟁에서 앞서가며, 첨단 GPS, 통신 장비를 갖추고 바쁘게 뛰어 가고 있나요? 좀 앞서가고 있나요?
아님 앞서 가는 가족들 뒤에서 투덜거리며 따라가려고 애쓰고 있나요?
아님 우리 나름 바람 불 땐 바람 맞으며, 시내 나오면 세수도 하고, 발도 담그고, 가끔 야호도 하면서 장난치며 가고 있나요?
정말 인생에 목적이라는 것이 있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 모두 천황봉이라는 목적지가 있는 건지요? 아마 아닐 겁니다. 우리를 앞서간 그 많은 사람들의 목적은 무엇이었습니까? 생산, 노동, 지배, 교화, 정치, 창조? 아닐 겁니다.
삶이란 어떤 목적일 수는 없을 겁니다. 부자가 되고 싶다고, 내 삶의 목적이 그럼 얼마입니까? 100억 인가요 아니면 1,000억, 참 어려운 일입니다.
삶은 살아가는 그 자체인 것 같습니다. 끝없이 알아가며 배워가며 그 길 위에 서 있는 것이 삶입니다. 우리 가족이 남보다 앞서는지, 뒤서는지, 소득 상위 10%인지, 하위 30%인지, 집이 자가인지, 전세인지, 분당 사는지, 인천 사는지, 아반떼 타는지, 제너시스 타는지는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즐거이 삶이라는 이 길 위에 서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당신과 나, 수현이가 이 길 위에 함께 걷고, 이 삶 위에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이 삶을 함께 기꺼이 즐기고, 우리의 추억을 함께 만들고, 우리의 이야기를 함께 만드는 것이면 됩니다. “함께”가 가장 중요합니다.
내가 진정한 나를 만나기 위해, 우리는 함께 이 길 위에 서 있는 겁니다. 나만 봐서는 항상 이기심만 충만합니다. 내가 당신을 보며 사랑하는 마음, 선한 마음으로 세상을 보다가 문득 진정한 나를 만나게 되고. 나와 당신을 똑 닮은 우리 아들의 그 눈, 그 감성으로 우리는 세상과 우리 자신을 다시 발견하게 될 겁니다. “함께”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들이지요.
우리는 각자의 진정한 자아를 찾는데 서로 길잡이가, 등대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다시 발견하기 위해, 런던으로, 파리로, 로마로 우리 삶의 박동을 듣기 위해, 우리 생의 숨소리를 듣기 위해 그 먼 곳까지 가야 했는지 모릅니다.
유럽의 정수, 유럽의 심장, 세상의 중심을 우리 식대로 우리 맘대로 쏘다니다 올겁니다.
이번 여행이 우리의 삶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우리 사고의 지평을 넓히고, 우리 추억의 밀도를 높이는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벌써부터 길 위에 뿌려질 “까르르”, “우 와”, “야~~”가 눈에 선하고 귀에 맴돕니다. 런던, 파리, 로마의 어느 골목길에서 문득 진정한 우리를 만날지도 모릅니다.